본명
박춘호
출생 나이
1946년 3월 (78세)
고향 출생지
서울
학력
서울봉래초등학교 (졸업)
풍문여자중학교 (졸업)
풍문여자고등학교 (졸업)
숙명여자대학교 (불어불문학 / 학사)
종교
개신교
데뷔
1970년 'Toi et Moi'
‘노래하는 시인’ 박인희 “대학생 돌아간 기분으로 ‘모닥불’ 부르겠다”
-2024. 6. 6
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가수 박인희(78)가 말했다. 데뷔한 지 54년이 지난 가수의 뜻밖의 고백. 10대 시절부터 품었던 연극 배우의 꿈은 대학 간 뒤 당시 잘나가던 극단 ‘실험극장’에 수석 합격하고도 집안의 반대로 좌절됐다. 그래도 고등학교와 대학 방송반 활동은 큰 즐거움이었습니다.
숙명여대 초대 방송국장 시절, 외부에서 사회를 봐달라는 제안이 제법 왔다. 서울 명동 미도파백화점(현 롯데백화점) 5층 미도파살롱도 그중 하나였다. 1960년대 말 당시 명동 음악감상실 쎄시봉이 포크의 성지였다면, 미도파살롱은 윤항기, 신중현 등 그룹사운드(록 밴드)의 성지였다. 그곳에서 사회를 보는데 “사회자도 노래 한번 해봐라” 하는 관객들 요청이 쏟아졌다. 뿌리칠 수 없어 에벌리 브라더스의 ‘렛 잇 비 미’를 불렀다.
이를 눈여겨본 사람이 있었으니 당시 공연하러 왔던 밴드 타이거즈의 이필원이었다. 그는 박인희에게 대뜸 듀엣으로 노래해보자고 제안했다. 함께 노래를 불렀더니 이번에는 이를 본 라디오 음악 방송 피디가 출연을 요청했다. 팀 이름도 없어 이필원이 ‘너와 나’로 급조하자 불문학 전공인 박인희는 같은 뜻의 프랑스어 ‘뚜아 에 무아’를 제안했다. 이 이름으로 방송 출연한 것이 큰 호응을 얻자 아예 정식 음반을 내기에 이르렀다. 1970년 그렇게 가수로 데뷔했답니다.
라디오 디제이 제안도 왔다. 기독교방송(CBS) ‘세븐틴’ 디제이를 맡아 하던 중 동아방송(DBS)에서 스카우트 손길이 왔다. 당시 청취율 1위였던 ‘3시의 다이알’ 디제이를 맡게 됐다. 방송에 더 재미를 느낀 그는 ‘뚜아 에 무아’를 나와 디제이에 전념했다.
‘문학청년’ 박건호가 찾아온 것도 그 즈음이었다. 자기가 가사를 쓰고 친구가 곡을 붙인 노래 12곡을 들고 왔다. 고등학생 때 낸 시집도 보여줬다. 시집을 넘기는데 ‘모닥불’이라는 시가 눈에 띄었다. 제법 긴 시의 가운데 토막을 읽는 순간 멜로디가 퍼뜩 떠올랐다. 집에 가서도 계속 맴돌아 노래로 만든 것이 1972년 첫 솔로 앨범 타이틀곡이 됐다. ‘모닥불’은 젊은이들이 놀러 가면 반드시 부르는 노래가 됐다. 이 곡으로 작사가 데뷔를 한 박건호는 이후 거장 작사가로 발돋움했습니다.